민주로, 내일로. 3일차 [태백산맥 문학관]

(태백산맥은 조정래 작가님이 쓰신 10권으로 구성된 대하 소설이다.)

해남 김남주 시인 생가 답사를 마치고 왔던 길로 돌아갔습니다. 답사를 가는 길은 오래 걸리는데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얼마 안 걸린 것같은 심리. 개운함일까요? 성취감일까요? 아니면 각자 그 곳에서 느꼈던 것을 이야기 하면서 걷기 때문일까요. 어쨌든 버스 타러 내려오는 길은 금방이였습니다. 생가에서 10 여 분을 내려와 버스를 탔습니다.

 

( 슬슬 지쳐갈 여행 3일 째, 아 지친다 ~. 카메라를 들이 미니 조용하게 폼을 잡는 두호와 시크 동선 그리고 쩍벌남 경수 )

 버스 가격은 1050원이였다. 해남 터미널로 돌아와서 벌교로 이동! 버스는 9800원 ~

벌교 터미널 도착 ! 우와 왕년에 터미널이 꽤 큰 걸 보면 벌교가 꽤나 컸던 도시였나보다. 적어도 30년은 되보이는 듯한 건물.

 

 

이번 여행 가장 큰 도움이 됬던 앱인 '네이버 지도'앱을 이용 ! 태백산맥 문학관을 찾아러 출발. 그런데 알고보니 바로 옆으로 가면 길이 나오는데 우린 한 바퀴를 돌았다.ㅋㅋㅋㅋㅋ

( 또 하나 유익했던 앱은 네이버 윙스푼. 각 지역의 맛집을 알려 줬던 앱. 개인적으로 별 4/5 )

 

 

입구에는 이렇게 큰 표지판이 있다. 5분 쯤 오르막 길을 올랐을까. 기하학적으로 생각 세련된 건물 발견!

 

건축가 김원 선생님이 설계하신 것이다. '소설 태백산맥을 건축으로 말하다'

~ 소설이 그려낸 분단의 아픔은 산의 등줄기를 잘라내는 아픔과 비견될 것이었다. 건축가가 산자락을 잘라내는 행동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건물은 우리의 그 아픈 이야기가 묻혀있던 땅 속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등줄기가 잘라지는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어야 했다.~

~건물은 한 발 물러선 듯, 멀리서 보면 그저 언덕에 유리탑 하나가 서 있어서 밤에는 지하의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불빛이 새어나오는 듯한 탑이 하나 보였으면 했다.~

~건물 안에 무엇을 많이 채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태백산맥 관련해서 수많은 평가와 연관작업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두고두고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갈 수 있도록, 즉 '되어진'것이 아니라'되어가는'개념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입구 바로 왼쪽 동판 위에 쓰여있던 건축가 김원 선생님의 글 중. 사진은 태백산맥 문학관 홈페이지)

 

 

 

입장료 대인 2000원. 2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총 6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태백산맥의 집필과정, 태백산맥 이외의 근현대사를 다룬 다른 소설 소개, 영화 태백산맥, 이적성 시비와 논란, 세계인의 소설 태백산맥 등. 넓은 전시장소에 깔끔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건축가 김원선생님의 말씀대로 과거형이 아니고 현재 진행형의 느낌을 받은 전시 구성이였다.

 

 

 

그리고 문학관 옆에는 원형상 선생님의 백두대간의 염원이라는 높이 8m, 길이 81m 인 거대 벽화가 있다. 세계 최대, 최초의 야외건식 '옹석벽화'라는데 이를 위해 지리산부터 백두산까지 4만여 개의 자연석 몽돌을 채집하셨다고 한다.

 

 

 

 

동선이는 소설이 보안법 위반이라는 고소가 11년이나 이어지다가 무협의 판정을 받았다는 기사들과 관련 자료들을 보며 두호의 말처럼 ‘한국 민주주의가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고 느꼈단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들어왔던 위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조정래 작가님은 문학관이 세워 졌을 만큼 위인으로 불린다. 업적에 대한 호평.
작가님은 10년 간 태백산맥이라는 글을 쓰시면서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긴 세월, 중년의 시절을
보내셨을까. 왜?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많은 위인들은 무엇을 위해 그렇게 일을 했는가.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는가. 내가 내린 결정은 이런 것같다. 한 사람. 한 사람이다. 후세에
익명의 그 한 사람을 위해 글을 쓰고 움직인다. 원동력이 될 지 모르는 말인데 사실 겸손해야
이런 대작도 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